생물의 세포는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음에도 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는 개념입니다. 이는 DNA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으면서도 유전자 발현이 조절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후성유전 조절의 핵심 기전 중 하나는 **히스톤 변형(Histone Modification)**입니다. 히스톤은 DNA가 감겨 있는 단백질로, 아세틸화, 메틸화, 인산화, 유비퀴틴화 등의 변형을 통해 유전자 접근성을 조절합니다. 이러한 변형은 마치 스위치처럼 특정 유전자가 켜지거나 꺼지는 데 영향을 줍니다.
면역계는 빠르고 유연하게 반응해야 하는 특성상, 이런 후성유전학적 조절 메커니즘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T세포와 B세포는 조혈모세포로부터 분화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전자가 단계적으로 발현되거나 억제됩니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히스톤 변형과 같은 후성유전학적 조절에 의존합니다.
예를 들어, T세포가 Th1, Th2, Th17, Treg 등의 아형으로 분화할 때 각 아형에서 특징적인 사이토카인 유전자가 선택적으로 활성화되는데, 이는 히스톤 아세틸화나 메틸화 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후성유전학은 면역기억 형성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초기 감염 이후 생성된 기억 T세포는 다시 감염되었을 때 빠르게 활성화됩니다. 이 능력은 단순한 유전자 복제 기억이 아닌, 히스톤의 후성유전적 마크가 남아 있는 상태로 설명됩니다. 이는 동일한 항원에 재노출되었을 때 해당 유전자가 즉시 발현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대식세포나 수지상세포가 병원체를 인식할 때, NF-κB, STAT, IRF 등의 전사인자가 활성화되어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유도합니다. 이때 해당 유전자 부위의 히스톤 변형 상태가 '열린(open)' 상태여야 즉각적인 전사가 가능해집니다.
만약 히스톤 탈아세틸화가 일어나 염색질이 응축된다면, 해당 유전자는 비활성화되어 염증 반응이 억제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염증성 사이토카인의 발현 속도와 강도는 후성유전학에 의해 조절됩니다.
최근 연구는 선천면역계도 일종의 기억 능력을 가질 수 있으며, 이를 **훈련 면역(trained immunity)**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감염 또는 백신 접종 후 대식세포나 NK세포의 반응성이 높아지는 현상으로, 후성유전학적 변화(예: H3K27ac 증가)가 핵심 역할을 합니다.
히스톤 탈아세틸화효소(HDAC)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데, 이를 억제하면 염색질이 풀려 유전자 발현이 유도됩니다. 이 원리를 이용해 HDAC 억제제는 자가면역, 염증, 암 등에서 면역 반응을 조절하는 치료 전략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예)
CAR-T 세포나 T세포 백신 개발에서, 세포의 ‘운명 결정’을 후성유전학적으로 유도해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면역세포를 생성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DNA 메틸화 효소(DNMT) 억제제, 히스톤 변형 조절제를 활용한 면역세포 리모델링 전략이 개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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