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세포(T lymphocytes)는 적응 면역(adaptive immunity)의 핵심적인 세포입니다. 이들은 병원체나 암세포를 인식하고 제거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특히 CD8+ 세포독성 T세포는 감염된 세포나 변이된 세포(예: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능력을 지니며, CD4+ 보조 T세포는 사이토카인 분비를 통해 면역 반응을 조절합니다.
일반적으로 병원체가 침입하면 항원제시세포(APC)에 의해 활성화된 T세포는 빠르게 증식하고, 효과기 T세포(effector T cells)로 분화하여 강력한 면역 반응을 유도합니다. 감염이 제거되면 대부분의 T세포는 사멸하고 일부는 기억세포로 전환되어 재감염에 대비합니다.
하지만 이 일반적인 면역 반응의 규칙은 만성 감염 또는 암과 같은 상황에서 달라집니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항원 자극에 노출된 T세포는 점차 기능을 상실하고 피로해지는 상태, 즉 **T세포 피로(T cell exhaustion)**로 전환됩니다.
T세포 피로는 일시적인 면역 반응 감소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기능 저하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 놓인 T세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입니다:
피로 상태의 T세포는 완전히 비활성화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기능을 유지하지만 효율적인 병원체 제거 또는 종양 억제에는 실패하게 됩니다.
피로한 T세포는 여러 억제 수용체를 동시에 과발현하는데, 그 중에서도 **PD-1(programmed cell death-1)**이 중심적 역할을 합니다. PD-1은 리간드(PD-L1/PD-L2)와 결합 시 T세포 내 신호전달을 억제하여 활성을 낮춥니다. 이는 만성적 항원 노출에 대한 면역계의 자가 조절 기전이지만, 병원체 혹은 암세포가 이를 역이용하여 면역 회피 전략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T세포 피로는 단순히 억제 수용체의 증가에 그치지 않고, 전사 인자 변화와 후생유전학적(epigenetic) 재구성을 동반합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조절로 인해, 피로한 T세포는 일시적인 기능 저하를 넘어서 회복이 어려운 기능적 쇠퇴 상태에 빠집니다.
HIV, HBV, HCV와 같은 만성 바이러스 감염에서는 바이러스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오랜 시간 체내에 남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CD8+ T세포는 계속해서 항원에 노출되며 점차 피로 상태로 전환됩니다.
암세포는 면역 감시를 피하기 위해 종양 미세환경(TME) 내에서 지속적 항원 자극과 면역억제 인자를 동시에 제공함으로써 T세포 피로를 유도합니다.
이러한 환경은 T세포의 에너지 생산과 활성을 저해하며, 지속적인 PD-1, LAG-3 신호 전달을 통해 피로 상태로 유도합니다.
T세포 피로가 암 면역 회피의 핵심임이 밝혀지면서, PD-1/PD-L1 및 CTLA-4 억제제와 같은 면역관문 억제제가 획기적인 항암 치료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T세포 피로 극복을 위한 다양한 전략들이 개발 중입니다:
또한 최근에는 T세포 피로 상태를 단순한 ‘장애’가 아닌 면역 시스템의 균형을 위한 진화적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인한 조직 손상을 방지하는 중요한 기전일 수 있으며, 면역치료의 균형점 조절이 향후 핵심 과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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