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liver)은 오랫동안 대사와 해독의 중심 기관으로만 인식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간은 음식물로부터 흡수된 영양소를 처리하고, 독소나 약물을 분해하며, 담즙을 생성하는 등 생리적 기능의 중심축에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면역학 분야의 발전은 간이 단순한 생화학적 처리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간은 면역계의 중요한 조직학적 거점으로, 특히 **‘면역관용(immune tolerance)’**이라는 독특한 면역 조절 기전을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장에서 흡수된 다양한 항원(식품 유래 단백질, 미생물의 구성 요소 등)이 문맥혈(portal vein)을 통해 간으로 유입되며, 간은 이를 면역적으로 ‘위협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는 선택적 무반응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불필요한 면역 활성화를 방지합니다.
장관에서 소화된 음식물, 무해한 미생물 구성 요소, 장내 공생균의 파편 등은 모두 장벽을 통과하여 간으로 전달됩니다. 이런 다양한 항원이 무차별적으로 면역반응을 유도할 경우, 간은 만성 염증 상태에 빠질 수 있으며, 이는 자가면역 간질환이나 지속적인 간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간은 이런 항원들을 적극적으로 ‘관용’하고,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처리합니다. 이와 같은 면역관용 시스템은 **‘문맥 면역관용(portal immune tolerance)’**이라고도 불리며, 간이 외부 항원에 대한 면역학적 필터 역할을 수행함을 의미합니다.
간은 선천면역과 후천면역의 교차점으로, 다양한 면역세포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복합적인 면역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간 내 수지상세포와 간세포가 항원을 제시할 때, 공자극 신호(co-stimulatory signal) 없이 항원을 제시하면 T세포는 비활성화 상태에 빠지며 면역관용이 유도됩니다.
간 내에서 항원을 인식한 T세포는 **조절 T세포(Treg)**로 분화될 수 있으며, 이들은 IL-10, TGF-β 같은 면역억제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하여 면역반응을 억제합니다.
간의 면역세포 중 일부는 항원을 인식한 후에도 간의 내피세포, 쿱퍼세포에 의해 제거되는 기전을 거칩니다. 이러한 세포사멸 유도는 과도한 면역반응의 방지책입니다.
간의 면역관용 기능이 실패하거나, 병원체가 이 시스템을 교란할 경우 다양한 간질환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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